그외 것들(정보)

김일VS이노끼 희귀 실황 동영상

diamond(김형돈) 2005. 8. 2. 14:54

:

일본에서도 오오끼 낀다로(김일)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죠~~

"이 병실이 나의 마지막 링"
[조선일보 2005.08.13 09:34:39]
75㎏으로 작아진 '박치기 왕' 김일

[장준성 기자]늙은 레슬러의 머리엔 검버섯이 보였다. 그는 ‘저승꽃’이라고 했다. 12일 서울 을지병원에서 ‘박치기 왕’
김일
을 만났다. 동네에 한두 대밖에 없던 TV 앞에 모두 모여 숨죽이고 지켜보던 그 사람, 외국의 거구들을 수없이 박치기로 쓰러뜨렸던 김일은 이제 휠체어에 앉아있었다. 올해 76세.
“봐요… 이게 김일이오.”
키 1m85에 130㎏까지 나갔던 몸무게는 75㎏이 되어 있었다. 손바닥 만한 생선 99마리를 먹었다는 한 끼 식사량은 이제 죽 또는 밥 반 공기. 통산 20회 프로레슬링 세계챔피언은 거대결장증, 고혈압, 임파부종, 심부전 등을 새 기록으로 추가했다. 박치기 후유증으로 생긴 뇌혈관 질환은 20년이 넘은 지병이었다.
“박치기는 스승 역도산에게 배웠어요. 55년 다짜고짜 일본으로 건너가 찾아간 역도산이 나한테 ‘박치기를 해보라’고 해서, 그 말씀 한마디에 박치기를 하게 됐죠. 역도산 손이 굉장히 컸는데, 그 손으로 골프채나 재떨이를 집어 내 머리를 때렸지요.”
그와 역도산의 인연은 특별했다. 63년 9월 역도산이 칼에 찔린 날, 김일은 미국 LA에서 생애 최초로 WWA(세계레슬링연합) 타이틀을 획득했다.
“그래서 레슬링이 내 운명이 됐습니다. 스승의 죽음을 헛되이하지 않으려면 계속 싸워야했으니까요.”
65년 한국으로 건너온 김일은 30여년간 3000여회에 걸쳐 국내외 경기를 치렀다. 라이벌인 안토니오 이노키, 압둘라 부처와는 매번 머리가 찢어지는 부상을 입으며 혈전을 치렀다. 그때부터 70년대 말까지가 국내 프로레슬링 전성기였다.

그리고 김일의 투병은 13년 전부터 시작됐다. 80년대 중후반 손댔던 활어수출, 미역, 명란 사업이 줄줄이 망한 스트레스로 지병이 더 심해져있던 그는 92년 겨울 새벽 속초 앞바다에 사진촬영을 갔다 돌아오는 길에 쓰러졌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김일은 이듬해 을지병원에 무료로 입원해 치료를 시작했다. “영웅이 쓸쓸하게 사라지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는 팬, 박준영 병원 이사장과 그의 수제자 이왕표(대한종합격투기협회장)가 13년간 뒷바라지한 덕이었다. 이날도 스승을 문병 온 이왕표는 “그는 나와 어린이들의 영웅이었고, 지금도 그렇다”며 “이렇게 살아계신 것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황은 여의치 않다. 거대결장증이 악화된 ‘박치기 왕’은 결국 지난 6월 23일 대장 절제 및 인공항문 이식수술을 받았다. 그는 “지금 내가 있는 병실이 나의 마지막 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프로레슬링이 쇼가 아니냐고 했죠? 인생 자체가 어차피 드라마고, 쇼 아니겠소.”

(장준성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peace.chosun.com])-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